응그래

귀여운 언니를 둔 자의 숙명

공항 도착장 문이 열리고, 핑크색 패딩을 입은 언니가 웃으며 걸어나왔다. 베를린에서 제주까지 20시간 넘는 이동 후에도 언니는 여전히 해맑았다. 짐을 나눠 들고 주차장에 가는 짧은 동안에 언니는 끊임없이 말했다. 재잘재잘. 이렇게 수다스런 사람이 내향인이란게 신기하고, 우리 언니가 벌써 서른 두 살이라는 것도 새삼스럽다.

우리 언니는 귀엽다. 나와 언니는 꽉찬 두 살 차이. 하지만 언니는 나보다 키가 작은데, 그 작은 몸으로 늘 쉬지 않고 말한다. 나는 ‘타이니(tiny) 타이니~’하고 언니를 놀린다. 그러면 언니는 ‘우씌~’ 하면서 기분 나빠하지만 그 모습마저 귀엽다. 언니는 ‘사람들이 다 날 좋아해!’라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귀여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으니까 언니는 항상 확률적으로 유리하다.

얼마 전 아빠의 생일날이었다. 저녁 식사로 무얼 먹을지 오래 고민하다가 미리 예약해 둔 식당을 찾았다. 민석이 농담처럼 아빠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은비랑 민혜 누나 중에 딱 한 명이랑 여행을 가야 한다면 누구랑 가실 건가요?’ 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민혜’라고 답했다. 나는 너무 속상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괜찮은 척 했다. 눈치없이 질문한 민석이 미울 정도로 슬펐다. 놀라울 만큼, 지금까지도 아픈 마음이 낫질 않는다.

오늘은 치지레이지였던 작은배 사무실에 언니가 처음 와보는 날이었다. 언니가 도착하기 전에 장을 보러 나섰다가 다시 사무실을 향해 걷는데, 멀리서 핑크색 인간이 보였다. 너무 멀어서 얼굴은 안 보여도 언니가 확실했다. 언니가 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 데도 반갑고 기분이 좋아서 ‘언니!’하고 부르고 싶었다.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을 것 같아 관두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그때 ‘민혜’라며 확신에 차 답하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짝 얼굴에 열이 올랐다. 대답하기 전에 조금 망설이기라도 할 것이지. 저렇게 귀여운 사람이니 나라도 이해했을 텐데.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지.